1970년대 중반, 벨 연구소(Bell Labs)의 켄 톰슨(Ken Thompson)이 떠난 후, UC 버클리의 빌 조이(Bill Joy)와 척 헤일리(Chuck Haley)는 유닉스(Unix) 커널을 직접 탐구하며 성능 개선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파스칼(Pascal) 컴파일러와 라인 에디터인 ex를 묶어 1977년 초 '버클리 소프트웨어 배포판(Berkeley Software Distribution, BSD)'을 만들었고, 약 30개의 복사본이 다른 대학으로 배포되었습니다. 초기 BSD는 독립적인 운영체제(OS)가 아니라 기존 유닉스 시스템에 설치하는 소프트웨어 모음이었으며, AT&T 유닉스 소스 라이선스가 있는 기관에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이후 빌 조이는 사용자 피드백을 반영해 파스칼 시스템을 개선하고, 시각 편집기 vi(ex의 시각 모드)와 C 셸(C shell) 등을 추가하여 2BSD를 출시했습니다. 약 75개의 복사본이 배포되었는데, 조이가 직접 모든 배포 요청을 처리하고 테이프에 복사하여 발송하는 등 열정적으로 관리했습니다. 1978년 버클리에 32비트 VAX 컴퓨터가 도입되자, 조이는 오잘프 바바오글루(Ozalp Babaoglu)와 협력하여 VAX 유닉스(32/V)에 가상 메모리(virtual memory) 기능을 통합했습니다. 당시 32/V는 VAX 하드웨어의 가상 메모리 기능을 활용하지 못해 프로그램 주소 공간이 물리 메모리에 제한되었는데, 이는 컴퓨터 대수 시스템 맥시마(Macsyma) 같은 복잡한 작업에 큰 제약이었습니다. 이들의 노력으로 가상 메모리 기능이 안정화된 3BSD가 1979년 12월부터 배포되기 시작했습니다.
BSD의 등장은 단순히 유닉스 개선을 넘어 오픈소스(open-source) 소프트웨어 배포의 중요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특히 DARPA(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가 자금을 지원하는 ARPANET 연구기관들이 서로 다른 컴퓨터와 운영체제를 사용하며 소프트웨어 공유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유닉스의 이식성(portability)과 버클리의 성공적인 3BSD 배포는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이후 DARPA가 버클리에 자금을 지원하여 TCP/IP 프로토콜을 BSD에 통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현대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빌 조이의 헌신적인 노력과 버클리의 자유로운 학풍은 기술 발전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공유 문화 확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