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들, 즉 아판타시아(Aphantasia)를 가진 이들이 상상력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꾸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한 리뷰 논문은 심상(mental imagery)이 단일 뇌 영역의 산물이 아니라 여러 뇌 영역이 조율된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험이라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아판타시아가 단순히 시각적 상상이 없는 상태를 넘어, 뇌 네트워크의 특정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기존에는 상상을 시각 처리 경로가 역방향으로 실행되는 과정으로 설명하는 '역방향 시각 모형'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우리가 실제로 사물을 볼 때처럼 뇌 뒤쪽의 일차 시각피질(primary visual cortex)이 상상 이미지의 선명도를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리뷰 논문은 일차 시각피질이 광범위하게 손상된 환자들도 시각적 상상을 유지하는 사례를 제시하며 기존 모형에 강력한 반례를 제기했습니다. 뇌 영상 연구들은 오히려 전두부(frontal lobe)와 방추상회(fusiform gyrus)가 심상 형성에 일관되게 활성화되는 반면, 일차 시각피질은 조용한 경우가 많다고 보고합니다. 이는 일차 시각피질이 심상의 발생원이라기보다, 다른 영역에서 생성된 심상의 선명도를 조절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판타시아의 경험은 시각적 심상만 없는 경우부터 소리, 냄새, 맛, 촉각 등 모든 감각적 심상이 없는 경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각적 상상이 없어도 공간적 사실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판타시아를 가진 사람은 테트리스(Tetris) 조각을 머릿속에 그리지 않고도 각 조각이 어떤 빈틈에 맞는지 학습된 지식으로 잘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시각적 심상의 부재가 곧 사고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으며, 뇌가 의식 경험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아판타시아가 뇌가 의식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연구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심상이 뇌 영역 간의 복잡한 소통에 달려 있다면, 개인마다 그림, 내적 목소리, 냄새, 움직임 등 각기 다른 감각을 중심으로 사고할 수 있습니다. 아직 객관적인 아판타시아 검사 방법이 없고, 유전 여부, 성장에 따른 변화, 훈련 가능성 등 많은 질문이 남아 있지만, 이번 연구는 심상과 의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하고, 아판타시아를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인지 방식을 포용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