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특허 침해 소송에 휘말리며 반도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MonolithIC 3D라는 회사가 SK하이닉스의 HBM 및 3D 낸드(NAND) 제품이 자신들의 3D 반도체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공급망 리스크를 넘어, 오래전에 구상된 3D 반도체 기술이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쟁점으로 다시 부상하는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줍니다.
MonolithIC 3D는 2026년 2월 SK하이닉스와 키옥시아를 상대로 소장을 제출했으며, ITC는 2026년 3월 조사를 개시했습니다. 이 회사는 총 8건의 미국 특허를 주장하고 있는데, 그중 3건은 SK하이닉스 HBM 제품의 D램(DRAM) 적층 구조와 관련되며, 5건은 3D 낸드 제품 구조와 관련됩니다. 특히 HBM 관련 특허들은 단순히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는 것을 넘어, 메모리 컨트롤 회로, 클럭 동기화 회로(PLL/DLL) 등 적층된 메모리를 효율적으로 제어하고 고속 데이터 전송을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HBM의 핵심 경쟁력이 단순 적층 수를 넘어 제어 및 연결 방식에 있다는 점과 일치합니다. 청문회는 2027년 1월, 최종 결정은 2027년 8월로 예정되어 있어 아직 최종 판단이 내려진 사건은 아닙니다.
이번 소송은 딥테크 특허의 전략적 가치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MonolithIC 3D의 특허들은 오늘날의 HBM을 직접 겨냥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반도체가 평면 미세화의 한계를 넘어 수직 적층, 고밀도 연결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술적 가설을 바탕으로 축적되었습니다. 시장이 준비되지 않아 당장 상용화되지 못했던 기술적 아이디어가 시간이 흘러 HBM과 3D 낸드처럼 수직 적층이 핵심이 되는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과거의 특허가 현재의 사업적 쟁점으로 다시 소환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딥테크 기업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특허는 단순히 현재 제품을 보호하는 수단을 넘어, 아직 시장이 열리지 않은 미래 기술적 가설을 권리의 형태로 보존하는 장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뒤늦게 기술의 방향으로 움직일 때, 과거의 특허는 강력한 협상력과 새로운 사업 기회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 기업들은 당장의 매출로 이어지는 제품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의 큰 방향을 읽고 그 길목이 될 수 있는 핵심 구조를 선별해 권리화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