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등교육의 오랜 전통인 4년 120학점 학사 학위 시스템이 변화의 기로에 섰습니다. 미국대학등록·입학관리협회(AACRAO)의 2026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70곳이 넘는 고등교육기관이 3년제 학사 과정을 운영하거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수업을 몰아듣는 조기졸업을 넘어, 학위에 필요한 총 학점 자체를 90학점 안팎으로 줄이는 새로운 접근 방식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물꼬를 튼 것은 북서부 인증기관인 NWCCU입니다. 2023년 9월, NWCCU는 브리검영대 아이다호 캠퍼스와 엔사인칼리지(Ensign College)의 온라인 과정 7개를 90~96학점 학사로 승인했습니다. 당시 NWCCU 회장은 120학점 기준이 학업 성취와 무관한 관행에 가깝다는 점과 영국 등 많은 나라가 3년제 학사를 운영한다는 점을 승인 이유로 들었습니다. 이후 미국 최대 인증기관인 고등교육위원회(HLC)를 비롯해 남부(SACSCOC), 뉴잉글랜드(NECHE), 서부(WSCUC) 등 주요 지역 인증기관들이 잇달아 3년제 학사 과정을 수용하는 지침을 발표하거나 승인 사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 인증기관은 기존 4년제 학위와 구분되도록 '응용 학사(Applied Bachelor)'나 '가속 학사(Accelerated Bachelor)' 같은 별도 명칭을 사용하고, 학생들에게 90학점 학위가 일부 고용주나 대학원에서 4년제와 동등하게 인정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리도록 조건을 달았습니다. 또한, 주로 취업과 직결되는 형사사법, 사이버보안, 회계, 경영 등 응용·전문 분야에 한해 3년제를 허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주 정부들도 이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인디애나주는 2024년 법을 제정해 모든 주립 4년제 대학이 2025년 7월까지 3년 안에 마칠 수 있는 학사 과정을 최소 하나 두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유타주는 아예 90~120학점 사이의 '응용학 학사'를 새로운 학위 범주로 만들었으며, 오클라호마주와 텍사스주도 3년제 학사 체계 마련을 지시했습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1년치 등록금과 생활비를 절감하고 1년 먼저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생기지만, 대학원 진학이나 특정 전문직 자격 요건에서 90학점 학위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변수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3년제 학사 실험은 한국 고등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의 4년제 대졸자 평균 졸업 소요 기간은 5년 1개월로, 남성 대졸자는 5년 2.1개월에 달합니다. 이는 군 복무, 취업·자격시험 준비를 위한 휴학 등 교육과정 외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조기졸업 제도는 학점 이수 기간을 단축하는 방식이라 미국의 학점 감축과는 구조가 다릅니다. 미국의 90학점 학사 실험은 학위에 필요한 학습량 자체를 재정의하는 시도로, 120학점 기준의 교육적 근거에 의문을 제기하며 한국의 대학 및 노동시장 진입 구조를 다시 성찰할 계기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