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과학의 선구자 앨런 케이(Alan Kay)가 쿼라(Quora)에서 '최초의 전자 컴퓨터 에니악(ENIAC)에도 BIOS가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며, 에니악에는 BIOS나 그에 상응하는 기능이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에니악을 프로그램 내장식 컴퓨터(stored-program computer)로 분류하기에는 부족하며, 기본 입출력 프로그램이 반드시 펌웨어(firmware)에 있어야만 BIOS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을 언급했습니다.
앨런 케이는 1960년대에도 많은 컴퓨터가 코드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여, 운영자가 스위치로 몇 개의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 종이테이프에 담긴 추가 명령어를 읽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초기 DEC 컴퓨터 대부분과 1964~1965년경 CDC 6600의 'dead start' 스위치 패널이 그 예시입니다. BIOS라는 공식 명칭은 1975년 CP/M 운영체제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현대적 용례는 1981년 IBM PC에서 시작되었으며, 두 경우 모두 ROM(Read-Only Memory) 기반이었습니다. 그는 엄격한 정의로는 펌웨어에 있어야 BIOS지만, 기능적 취지에 따르면 ROM 없이도 BIOS로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논의는 현대 컴퓨팅 시스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부팅(booting) 과정과 초기 컴퓨터 아키텍처의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에니악이 프로그램 내장형으로 개조된 1948년 이후에도 함수표 다이얼로 프로그램을 설정하는 방식이었고, 천공카드는 데이터 입출력에만 사용되었다는 점은 초기 컴퓨터의 원시적인 입출력 환경을 보여줍니다. 앨런 케이의 답변은 단순히 과거 기술에 대한 회고를 넘어, 컴퓨터가 어떻게 스스로를 구동하고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게 되었는지 그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며, 기술 용어의 정의와 시대적 맥락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