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개인의 업무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지만, 기업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기존 시스템과 조직 구조가 견고한 브라운필드(brownfield) 기업에서 AI 전환이 더딘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닌,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할과 팀의 권한을 정체성으로 여기는 데 있습니다. 개인이 AI로 업무를 빠르게 처리해도, 다른 팀의 승인이나 백로그(backlog)를 기다려야 한다면 조직 경계를 넘는 순간 속도는 다시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 기업들은 재능과 경험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AI 활용 방식에서 스타트업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사업 생존과 고객 성공이라는 공동 목표에 집중하며 역할과 팀의 경계를 허무는 반면, 기존 조직은 기존 역할과 절차 안에서 개인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합니다. 예를 들어, 시애틀의 AI 도입 전략 패널에서는 공통 AI 스킬 배포와 리더의 업무 자동화에 집중하는 전술이 논의되었지만, 이는 기존 업무에 AI를 주입하는 수준에 머물러 조직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기존 조직의 복잡한 승인 절차(RACI, DACI 등)와 소유권 경계는 구성원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슈퍼 IC(Individual Contributor)나 제품 엔지니어(Product Engineer)와 같은 새로운 역할의 등장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러한 현상은 구성원들이 직함, 역할, 책임을 자신의 직장 내 정체성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구조와 역할을 포기하는 것은 정체성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변화에 저항하게 됩니다. 베인(Bain)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 951곳 중 “기술은 작동했지만 가치는 실현되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은 채 AI를 도입하면 기대한 사업 가치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AI 전환에서 리더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구성원들의 정체성 집착을 완화하고 변화 의지를 북돋는 것입니다.
조직이 AI 시대에 맞춰 진정으로 변화하려면, 단순히 AI 도구를 배포하는 것을 넘어 업무 경계와 승인권, 역할과 책임을 재설계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에게 기존 영역을 넘어 다르게 일할 권한을 부여하고, 더 큰 목표를 자신의 목표로 받아들일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창업자들이 역할이나 팀 정체성보다 '기업가로 살아남기', '고객 성공 돕기'와 같은 더 큰 과제에 집중하는 것처럼, 기존 조직도 구성원들이 더 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는 변화를 강요하기보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변화에 참여하고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함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