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컴퓨터 게임을 하려면 컴퓨터의 작동 방식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autoexec.bat 같은 설정 파일을 읽고, 때로는 특정 게임을 위한 부팅 디스크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10살짜리 아이도 게임을 하기 위해 기계가 요구하는 조건을 맞춰야 했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컴퓨터와 씨름하며 그 작동 원리를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모뎀의 연결음은 두 기계가 소통 방식을 협상하는 소리였고, 우리는 그 소리만으로 연결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기계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약관'을 제시했고, 우리는 그 약관을 이해해야만 기계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만드는 기계와 서비스, 특히 AI 비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바로 나타나고, 설정 파일을 읽을 필요도, 기계의 조건을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AI는 사용자의 문장에 맞춰 스스로를 재구성하고, 문제가 생기면 사과하며 다시 시도합니다. 이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편리하고 수용적인 도구입니다. 과거에는 기계가 우리에게 저항했기에 우리는 그 기계를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도전하지 않는 기계를 그저 '사용'할 뿐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능력 상실'로 봅니다. 숙련된 기술자들이 사라지고, 언젠가 시스템 깊은 곳에 문제가 생겼을 때 아무도 고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능력' 자체는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AI 모델은 인간이 읽지 않는 모든 매뉴얼을 읽었고, 모든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은 기계와 싸우고, 지고, 다시 도전하여 마침내 기계가 반응하는 것을 느끼며 얻었던 '친밀함'입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기계에 의존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기계를 가장 덜 알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습니다. 1995년에 게임 하나를 돌리기 위해 직접 비트를 재배열했던 그 베이지색 컴퓨터보다, 우리는 지금의 기계를 훨씬 덜 이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는 이러한 상실감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관계를 그리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기계는 전등 스위치처럼 당연하고 쉬운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편리함 속에는 슬픔이 없습니다. 이 슬픔은 오롯이 기계가 어려웠기에 비로소 기계를 '알았던' 마지막 세대인 우리만의 것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무엇을 잃었는지 아는 마지막 사람들입니다. 밤늦게 모뎀 연결음을 찾아 듣는 행위는, 마치 오래된 압화처럼 과거의 친밀했던 관계를 기억하려는 시도와 같습니다. 현대 컴퓨터는 그 소리를 완벽하게 재생했지만, 그 기계는 더 이상 우리가 자신을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들었고, 우리가 원했던 세상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