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를 보장하기 위해 수리 정보 공개를 의무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제조사가 이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시민단체 'Right to Repair Europe'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장에 출시된 기기의 80% 이상이 필요한 수리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EU의 제도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조사단은 지난 1년간 출시된 스마트폰 모델 2,334건의 등록 기록을 검토했습니다. 그 결과, 부품 가격이나 수리 지침을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 링크를 기재한 경우는 약 18%에 불과했습니다. 절반가량은 URL 입력란이 비어 있었고, 19%는 관련 정보가 없는 페이지로 연결되거나 심지어 '테무(Temu)'나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 같은 온라인 장터로 안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부 제조사가 이러한 미준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수리 용이성 최고 등급인 A등급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정보를 공개한 제품조차도 교체 배터리 가격을 14~128유로(약 2만~19만원)처럼 지나치게 넓은 범위로 표시하거나, 실제 부품 가격을 찾기 위해 여러 번 클릭해야 하는 등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지적되었습니다.
이러한 제조사들의 미온적인 태도는 EU의 수리권(Right to Repair) 정책의 초기 집행에 대한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습니다. EU는 2025년 6월부터 스마트폰·태블릿에 수리 용이성 관련 요건을 본격 적용하고, 2027년 2월부터는 신규 모바일 기기에 사용자가 직접 교체할 수 있는 배터리 의무화 규정까지 시행할 예정입니다. 이번 조사 결과는 규제 당국이 제조사의 자체 신고 점수를 더욱 엄격하게 검증하고, 미준수 신고 절차를 개선하는 등 집행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소비자들이 더 오래 기기를 사용하고 불필요한 전자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수리권 보장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며, 이를 위해서는 제조사의 책임 있는 참여와 규제 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필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