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금융 서비스 분야에 몸담아 온 나이젤 모리스(Nigel Morris)는 수많은 '혁명' 주장에 회의적이었지만, 인공지능(AI)만큼은 이전의 어떤 기술 물결과도 다르다고 단언합니다. 그는 정보 기반 전략, 인터넷, 디지털화, 클라우드 컴퓨팅 등 지난 혁신들이 금융 산업을 변화시켰지만, AI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금융의 운영 체제(Operating System) 자체를 재작성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모리스는 AI가 이미 자산 관리, 투자 은행, 세금 신고, 소비자 금융, 콜센터 등 금융 서비스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Zocks는 고객 대화를 구조화된 정보로 바꾸고, Rogo와 Model ML은 투자 은행의 분석 작업을 자동화하며, April은 세금 신고를 혁신하고 있습니다. 또한, Augustus는 AI 시대의 청산 은행(clearing bank)을 구축하고, Footprint와 Sardine은 AI 기반의 위험 및 규제 준수(risk and compliance), 신원 확인(identity verification) 시스템을 재구축하며 금융 시스템의 근간까지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AI는 금융의 모든 가치 사슬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만들고, 나아가 근본적으로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AI가 가져올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한계 비용(marginal cost)을 제로에 가깝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대출 심사, 규제 준수 검토, 고객 서비스 등 기존에 고정 운영 비용으로 여겨지던 기능들의 비용이 AI를 통해 극적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이는 캐피탈 원(Capital One)이 30년 전 개별 고객에게 맞춤형 가격을 제공하며 시장을 뒤흔들었던 것과 유사하게, AI가 전체 금융 스택(stack)에 이 논리를 적용하여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 구조를 동시에 재편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AI는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가능하게 합니다. 고객의 특정 요구에 완벽하게 맞춰진 상품, 일일 현금 흐름에 따라 변동하는 신용, 개인별로 세분화된 보험료 책정 등이 그 예시입니다. 지난 3년간 구축 가능한 것의 경계가 이전 20년보다 더 확장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를 포착한 창업자들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AI 혁신의 물결은 핀테크(Fintech) 스타트업에게 가장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핀테크는 민첩한 의사 결정과 빠른 실행력으로 AI를 도입하고 구현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금융 기관(incumbent financial institutions)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수십 년간 축적된 거래, 잔액, 연체 기록 등 경제에서 가장 풍부한 독점적 데이터셋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가 AI 시대의 연료라면, 대형 은행과 보험사는 그 연료를 정제할 수 있는 정유소를 소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모리스는 기존 금융 기관들이 고객 충성도를 '관성'과 혼동하여 결정적인 우위를 잃어버리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다고 지적합니다. 선지급 급여(earned-wage access), 선구매 후결제(buy now, pay later), 개인 간 송금(C2C remittances), 디지털 증권 중개(digital brokerage) 등 기존 금융사들이 진입하지 않았던 분야에서 로빈후드(Robinhood), 레볼루트(Revolut), 스트라이프(Stripe), 누뱅크(Nubank)와 같은 핀테크 유니콘들이 탄생했습니다. 고객 데이터를 소유하는 것과 그 데이터를 활용할 의지와 능력을 갖추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대부분의 데이터는 기존 모델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된 조직 내 레거시 시스템에 갇혀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에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스스로 파괴할 용기와 AI 중심으로 기술과 인재를 재편하려는 의지가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을 잃고 산업 통합의 흐름 속에서 도태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