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발전은 제품을 만들고 구현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낮췄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무엇을 누구를 위해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비싼 구현 비용이 잘못된 아이디어를 걸러내는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저렴하고 빠른 반복이 오히려 아무도 원치 않는 제품을 계속 만들게 하는 함정이 되고 있습니다.
디자인 업계의 논의는 주로 역할, 제작 역량, 안목(taste), 표준 등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제품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고객의 무관심, 대체재, 전환 비용과 같은 현실적인 장벽들입니다. 한 회사는 2년 반 동안 네 차례나 제품을 구축하고 재구축했지만, 정작 누구를 위한 제품인지 답하지 못해 고객의 관심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구현이 쉬워졌다고 해서 제품의 존재 이유와 대상 고객을 찾는 것이 쉬워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Roman Pichler의 제품 전략 프레임워크는 제품이 누구를 위한 것이고, 왜 고객이 그 제품을 원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을 핵심으로 꼽습니다. 즉, 제품 조직의 역할은 단순히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AI 시대에는 아이디어 생성이 사실상 무료에 가까워지면서, 무한한 선택지 속에서 좋은 것을 골라내는 '판별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품질과 명세로 구현된 제품이라도, 고객이 원하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높은 구현 비용이 아이디어를 신중하게 검증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예를 들어, 맨해튼에 바(bar)를 열 때 15만 달러의 자금과 6주의 시간이라는 제약은 주변 경쟁 업장을 철저히 분석하고 '동네 거실 같은 공간'이라는 명확한 전략을 세우게 했습니다. 그러나 AI로 구현이 빠르고 저렴해지면서, 아이디어가 좋은지 멈춰서 확인할 이유가 줄어들고 다음 반복으로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이는 실패한 아이디어를 포기하게 만드는 압력을 약화시켜, 팀이 의미 없는 제품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AI 시대의 가장 중요한 레버리지는 제작 속도가 아니라 '무엇이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누구의 어떤 문제를 왜 지금 해결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구현 비용이 사라진 자리는 팀의 인적 비용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명확한 결정 없이 반복되는 비상 상황은 팀을 소진시키고 유능한 인재를 떠나게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품질은 제품 논의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지만, 잘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올바른 제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시장이 결론을 내리기 전에 제품 조직이 먼저 결정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은 바로 '판단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