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이팔 벤처스(PayPal Ventures)가 8억 5천만 달러 규모의 펀드를 정리하고, 피델리티 인터내셔널(Fidelity International)도 런던 벤처 부문을 조용히 폐쇄했습니다. 불과 6주 만에 두 개의 주요 기업 벤처 프로그램이 문을 닫으면서, 기업들이 벤처 투자에서 발을 빼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체 기업 벤처 투자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베인 캐피탈(Bain Capital)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인공지능(AI) 딜 가치의 68%에 기업 투자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는 2021년 이후 벤처 펀딩이 가장 활발했던 해로, 메타(Meta), 엔비디아(Nvidia), 구글(Google), 디즈니(Disney), 스페이스X(SpaceX), ASML 등 빅테크 기업들이 AI 스타트업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주도했습니다. 특히 엔비디아는 4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20대 AI 자금 조달 중 13개에 참여했으며, 메타는 스케일 AI(Scale AI) 지분 인수에 143억 달러를 지불했습니다. 세일즈포스 벤처스(Salesforce Ventures)와 시스코(Cisco)의 벤처 부문도 앤트로픽(Anthropic)의 35억 달러 규모 시리즈 E 라운드에 참여하는 등, 소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전체 CVC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기업 벤처캐피탈 시장이 두 갈래로 나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엔비디아, 알파벳(Alphabet), 세일즈포스, 시스코와 같은 기업들에게 스타트업 투자는 핵심 전략의 일부이며, 기술 주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합니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는 자사 칩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에 투자하여 생태계를 강화합니다. 반면, 대부분의 다른 기업들에게 벤처 투자는 여러 전략적 우선순위 중 하나일 뿐이며, 핵심 사업과 자금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신임 CEO가 비용 절감을 추진할 경우, 잘 운영되던 벤처 프로그램이라도 정리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자본 배분 원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과거 2000년과 2008년에도 유사한 폐쇄 물결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양극화는 소규모 펀드와 스타트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실리콘밸리 은행(Silicon Valley Bank)의 CVC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펀드들이 더 적고 목표 지향적인 딜을 추구하고 있으며, 세컨더리 마켓(secondary market) 활용 비중도 2024년 15%에서 2025년 22%로 증가했습니다. 페이팔의 포트폴리오 매각 시도도 같은 맥락입니다. CVC가 중도에 철수하면 포트폴리오 기업들은 전략적 후원자와 후속 투자처를 잃게 되고, 함께 투자했던 소규모 펀드들은 다음 라운드의 앵커 투자자를 잃게 됩니다. 세컨더리 매각은 장기적인 파트너를 재무적 투자자로 대체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스타트업 경영진과 벤처캐피탈 펀드 매니저들은 기업 자본이 언제든 들어오고 나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펀드들은 유망한 포트폴리오 기업에 대한 추가 투자 역량을 미리 확보하여, 기업 파트너의 이탈이 오히려 지분을 늘릴 기회가 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창업자들 역시 현재 투자자 중 누가 다음 라운드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기업 벤처캐피탈은 계속 성장하겠지만, 영구적인 자본은 시장의 상위 소수 기업에 집중되고 나머지는 이러한 현실에 적응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비하는 펀드와 창업자들이 결국 성공적인 기업의 더 많은 지분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